지혜와 처세훈.책읽기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마라

녹색걷기 2024. 2. 11. 01:52

https://youtu.be/r1pacyPrhiw?si=bJoMV93Dey8Z4C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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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는 삶의 지혜가 전적으로 인간의 의식에 내재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행복론으로 불리며, 행복론이란 인생을 될 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을 가리킨다. 이런 기술은 행복한 존재로 거듭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사실을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서는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므로) 오히려 냉정하고 노련한 성찰을 통해 비존재 (존재의 부정형_역주)가 되느니 행복한 인생을 사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지혜라는 개념에서 보면 행복한 삶에 끝없이 집착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행복한 생활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이 같은 존재의 개념과 부합하는지, 아니면 부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나는 내 철학이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행복론은 똑같은 질문에 긍정을 표한다. 나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권에서는 이 행복론 자체의 태생적 오류를 지적한다. 그래서 행복론을 완성하기 위해 원래 나의 철학이 추구하는 높은 경지의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견해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 결과 이 책은 이러한 오류를 고수하면서 익숙하고 경험에 근거한 순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행복론이라는 단어 자체는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니 제한적인 가치만을 지닌다. 또한 행복론은 완벽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 주제는 끝없이 논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한 말을 되풀이할 확률도 높다.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의도로 쓰인 격언집처럼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는 카르다노의 『역경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관하여 de utilitate ex adversis capienda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카르다노의 책을 참고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신의 저서인 『수사학』에서 행복론을 언급하긴 했지만, 수박 겉핥기식에 그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철학계 스승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러 가지 사상을 짜깁기하기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상을 편집하여 글을 쓰다 보면 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일관된 견해를 상실한다. 현자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같은 주장을 했으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어리석고 악한 채로 떠날 것이다.’

나는 삶의 지혜가 전적으로 인간의 의식에 내재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행복론으로 불리며, 행복론이란 인생을 될 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을 가리킨다. 이런 기술은 행복한 존재로 거듭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사실을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서는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므로) 오히려 냉정하고 노련한 성찰을 통해 비존재 (존재의 부정형_역주)가 되느니 행복한 인생을 사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지혜라는 개념에서 보면 행복한 삶에 끝없이 집착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행복한 생활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이 같은 존재의 개념과 부합하는지, 아니면 부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나는 내 철학이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행복론은 똑같은 질문에 긍정을 표한다. 나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권에서는 이 행복론 자체의 태생적 오류를 지적한다. 그래서 행복론을 완성하기 위해 원래 나의 철학이 추구하는 높은 경지의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견해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 결과 이 책은 이러한 오류를 고수하면서 익숙하고 경험에 근거한 순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행복론이라는 단어 자체는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니 제한적인 가치만을 지닌다. 또한 행복론은 완벽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 주제는 끝없이 논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한 말을 되풀이할 확률도 높다.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의도로 쓰인 격언집처럼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는 카르다노의 『역경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관하여 de utilitate ex adversis capienda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카르다노의 책을 참고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신의 저서인 『수사학』에서 행복론을 언급하긴 했지만, 수박 겉핥기식에 그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철학계 스승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러 가지 사상을 짜깁기하기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상을 편집하여 글을 쓰다 보면 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일관된 견해를 상실한다. 현자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같은 주장을 했으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어리석고 악한 채로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