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년은 아직 중년에
불과 활동하고 배우면서
여생을 즐겁게...
논어의 첫 문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는 이 유명한 문장은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로 해석된다. 공자는 어떻게 공부하였기에 공부를 통해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을 얻은 것일까? 대체 배우고 익히는 공부가 무엇이었길래?
“군자는 먹을 적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적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질정한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공자의 말이다. 공자에게 배움은 먹고, 자고, 말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일상이 공부가 되려면 어때야 할까? 아마도 기질을, 성향을 그리고 버릇과 몸의 운용방식을 바꾸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을까?
리듬을 잃지 않고 내 몸과 하나가 되어 공부하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이를 공자는 ‘호학(好學)’이라고 했다. 공자는 자기자신을 ‘매일 공부하여 모르는 것을 깨우치고, 배움이 쌓여서 능숙해 지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호학자’라고 칭했다. 좋아하면 늘 가까이하고 싶고 마음을 쏟다보면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공자에게는 공부가 그런 대상이었다.
공부는 일차적으로 많이 보고 들어야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궁금하거나 의심나는 것은 끊임없이 질문해야한다. 질문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공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질문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선별하고 모르는 것 없이 이해가 된 후에는 생각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생각이 뒤따르지 않는 공부에는 남는 것이 없다. 이렇게 의문나는 점을 없애고 검증해 갈 뿐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것을 유추해야 한다. 이러한 유추가 바로 생각의 핵심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공부는 이처럼 일상을 떠나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공부이지 도달해야하는 목표점의 공부가 아니었다. 지식을 축적하고 남에게 내세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완성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공자의 공부의 길이었다.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연이 바로 그런 공부의 길을 간 사람이었다.
공자는 안연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을까? 안연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평가한 근거는 그가 시를 얼마나 많이 암송하는지,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에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자신의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라고 칭찬하고 자랑하였다. 우리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참으로 다르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적이나 등수 등, 양으로 표현되는 결과를 놓고 공부를 평가한다. 그러나 공자의 공부는 결과로서의 점이 아닌,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선의 공부였다. 선의 공부는 끝이 없다. 과정과 연결이 더 중요하다. 점의 공부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과정은 시간 낭비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공부의 길을 자격증, 경쟁, 점수에 제한하지 않고, 나를 발견하고 키우는 쪽으로 방향 선회한다면 효율과 성과의 노예가 되지 않고, 기쁨을 낳는 공부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공자를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쁨이 되는 그런 공부의 길을
꿈꾸어 본다.
'지혜와 처세훈.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면소통 김주환 지음 (0) | 2023.06.05 |
---|---|
신경끄기의 기술 (0) | 2023.06.03 |
용산 감정서가 (0) | 2023.05.31 |
인생 연구(정지돈 지음, 창비) (0) | 2023.05.29 |
부처님 오신날 (0) | 2023.05.27 |